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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빛, ANGLEPOISE

픽사 타이틀에 등장하는 그 조명.

2020. 12.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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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 애니메이션의 팬이라면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로고 타이틀을 기억할 거다. 허리가 사람처럼 꺾여 있는 테이블 조명 하나가 깡충깡충 뛰어서 등장하는 그 영상 이야기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조명 중 하나일 이 제품, 아니 캐릭터의 이름은 룩소 주니어(Luxo. JR)다. 실재하는 제품은 아니지만 참고한 모델은 있다. 바로 영국 브랜드 앵글포이즈의 조명이다. 혹시 야근 중인 픽사 애니메이터들의 책상에 앵글포이즈의 제품이 하나씩 놓여 있었던 건 아닐까 의심스럽다.

근거 없는 추측은 아닐 거다. 자유롭게 각도를 조절할 수 있는 앵글포이즈의 테이블 램프는 작업자들에게 꼭 필요한 장비일 테니까. 게다가 기계 장치처럼 다소 무뚝뚝해 보이는 디자인은 공간에 흥미로운 긴장감을 더해준다. 사무실뿐만 아니라 일반 가정의 거실이나 침실에서도 충분히 매력적인 존재감을 과시할 제품이다. 1932년에 설립된 이래 9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도록 꾸준히 사랑을 받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전설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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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글포이즈의 창업자는 자동차의 서스펜션 엔지니어였던 조지 카워딘(George Carwardine)이다. 그는 1932년에 스프링, 크랭크, 레버를 활용해 사람의 팔처럼 자유롭게 조절이 가능하면서도 안정감 있게 자세를 고정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개발했다. 이를 토대로 1933년에 출시된 오리지널 1227은 그 자체로 새로운 장르나 마찬가지였다. 탁월한 기능성과 독창적인 디자인은 이후의 조명 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10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사용자들의 필요를 정확히 공략한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감탄을 자아낸다.

영국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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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에 영국 우체국은 아이코닉한 디자인을 모아 우표를 발행했다. 자동차 미니, 콩코드 여객기, 펭귄북스, 지하철 노선도, 이층버스와 함께 오리지널 1227 램프도 컬렉션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자국의 디자인에 대한 자부심이 큰 영국에서 앵글포이즈가 보유한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일화다. 시대가 바뀌고 취향이 변해도 여전한 힘을 발휘하는 클래식이다.

디자이너와의 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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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글포이즈는 전통을 지키는 동시에 꾸준히 새로운 변화를 추구했다. 여러 걸출한 디자이너들과의 협업 역시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코닥, 켄우드, 파커 등과 작업했던 영국의 산업 디자이너 케네스 그레인지는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할 이름이다. 2003년에 앵글포이즈의 디자인 디렉터로 합류한 그는, 타입 3 데스크 램프를 시작으로 브랜드의 개성과 참신한 비전을 결합한 다양한 결과물들을 선보였다. 1930년대에 생산됐던 클래식 모델을 재해석한 타입 75는 특히 많은 사랑을 받은 스테디셀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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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글포이즈와 돈독한 인연을 맺은 패션 디자이너들도 있다. 클래식에 위트를 더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폴 스미스는 타입 75를 다채로운 컬러 팔레트로 변주했다. 조명 자체의 구조적 아름다움을 한껏 강조하는 아이디어다. 담백하면서도 세련된 스타일로 정평이 나 있는 마거릿 호웰 역시 타입 75를 주제로 삼았다. 따뜻하면서도 깊고 차분한 색상이 익숙한 디자인에 새로운 무드를 제공한다.

예술가의 애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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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유명 아티스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앵글포이즈의 열렬한 팬이었다. 산업 디자이너 케네스 그레인지는 브랜드에 합류하기 전부터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개인적인 애정을 드러내곤 했다. “앵글포이즈는 밸런스의 작은 기적입니다. 우리가 높이 평가해야 할 성취지요.” <찰리와 초콜릿 공장> <마틸다> <제임스와 슈퍼 복숭아> 등 독창적이고도 환상적인 작품들로 잘 알려진 작가 로알드 달은 오리지널 1227 램프 아래서 자신의 걸작들을 완성했다. 로알드 달 뮤지엄은 앵글포이즈 측에 사이즈를 키운 대형 오리지널 1227 램프를 특별히 주문하기도 했다.

구글부터 디자인 호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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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넓은 활용도는 앵글포이즈 조명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다. 구글, 스포티파이, 링크드인 같은 IT기업부터 내들러 코벤트 가든 같은 부티크 호텔까지, 다양한 공간들이 앵글포이즈의 제품을 선택한 건 그런 이유 때문이다. 과시적인 디테일 없이 본연의 기능에 담백하게 집중한 디자인은 어느 곳에서 맞춘 것처럼 어울린다. 오래 사용해도 좀처럼 질리지 않기 때문에 투자할 가치가 충분한 조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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