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dy.

VIEW > FOOD

FOOD

가짜 술의 세계

당신은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있는가?

2020. 11. 16

Writer 신현호 : 여행, 그릇, 음식에 관심이 많은 푸드 칼럼니스트. 부업은 회사원.

얼마 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저가의 시칠리아 와인을 사시까이아(Sassicaia)로 둔갑해 수출하려던 사기꾼들이 검거되었다. 사시까이아는 이탈리아 토속 품종 대신 프랑스의 포도품종 까베르네 쇼비뇽을 주 품종으로 사용해 보르도 스타일로 만들어지는 수퍼 토스카나(Super Toscana)의 대표 와인이다. 낡은 이탈리아의 와인 등급 제도에 정면으로 도전해서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가 되어버린 와인이자 이탈리아 와인 혁신의 상징이기도 하다. 사시까이아 2015년 빈티지는 와인 스펙테이터가 선정한 2018년도 탑 100 와인의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가짜 술_detail_01.jpg 이미지: 사시까이아 공식 홈페이지 (http://www.tenutasanguido.com/eng/Sassicaia.html)

이 가짜 와인 사건에는 몇 가지 괘씸한 지점들이 있다. 우선 한국과 중국, 러시아를 대상으로 했다는 것. 이 범죄의 기저에는 이 나라의 와인 소비자들이 시칠리아 저가 와인과 수퍼 토스카나 최고의 와인도 구분하지 못할 거라는 일종의 멸시가 깔려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내가 정말 이 와인을 마시고 바로 가짜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어떤 좋은 식당에서 주문한 사시까이아를 오픈해서 시음해보고 ‘가짜인 것 같으니 환불해달라’고 할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다. 진짜 사이에 가짜를 섞어 놓고 그중에 가짜를 고르라고 한다면 아마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상대적인 비교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하지만 가짜라고는 상상도 못할 자리에서 서빙된 와인을 한 번 맛보고 진위 여부를 자신 있게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른 와인이 나왔을 때, 그냥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정도를 넘어 확신을 가지고 이 ‘와인은 가짜다'라고 말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이다.

깊게 공부하며 마시진 않았지만 와인을 즐긴 지가 어느덧 20년 정도 된다. 경험이 아주 넓다고는 할 수 없지만 수퍼 토스카나 와인들이 영향을 받은 보르도 좌안의 와인들 특징들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예전에 사시까이아를 몇 번 맛본 적도 있다. 하지만 사시까이아가 매년 빈티지 별로 꾸준히 마실 수 있을 정도로 대중적인 와인은 아니다. 만약 가짜 사시까이아를 마시고 나서, 단순히 보관상태나 빈티지의 차이를 넘어서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해도 (소심하게 컴플레인을 시도해보겠지만) 누가 나와서 ‘그럴 리가 없습니다'라고 한 마디만 해도 아마 바로 꼬리를 내릴 것이다.

가짜 술_detai

아마 이 사기꾼들이 노린 범죄의 희생자는 나 같은 사람일 것이다. 애초에 평소 와인을 즐겨마시고 특별한 날이라면 좀 비싸다 싶은 와인이라도 기꺼이 사 마실 정도로 와인을 좋아하지만 맛을 제대로 감별하지는 못하는 소비자, 이보다 더 완벽한 표적은 없다. 사치품에 모조품이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 행위가 옳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범죄를 저지를 충분한 인센티브가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사치품은 작은 차이에 큰돈을 지불하는 재화이다. 그래서 그 작은 차이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쉽게 속이고 큰 이문을 취할 수 있다. 하지만 전문가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완벽한 복제품이라면 어떨까? 이 술을 우리는 가짜라고 부를 수 있을까?

최근에 실리콘 밸리의 한 스타트업 회사에서 오래 숙성한 위스키와 화학적 조성을 똑같이 재현해 같은 맛을 낸다는 위스키를 발매했다. 사실 어느 지역에서 어떤 재료를 사용해서 주정을 만들고, 고유의 향을 입히기 위해 어떤 오크통에 몇 년을 보관한다는 이 모든 아름다운 마케팅 메시지와 브랜딩 스토리를 걷어내고 나면, 위스키란 그저 향을 내는 화학성분의 조합된 일정량의 알코올일 뿐이다.

이 조합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파악할 수 있고 그대로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리고 이 사실을 소비자에게 속이지 않고 적당한 가격에 판매한다면 이 술을 가짜라고 부를 수 있을까? 사실 우리는 이렇게 주정에 향을 입혀 만든 술에 이미 아주 익숙하다. 우리나라 성인 1명당 연간 85병을 마신다는 소주가 그렇게 만들어진다. 소주가 진짜 술이라면 이 위스키를 가짜라고 부르기는 조금 머쓱하다.

가짜 술_detail_03.jpg 이미지 출처: https://www.bespokenspirits.com/

이런 ‘가짜’ 술들은 되려 ‘진짜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해준다. 미세한 차이를 구분해내지 못하는 소비자에게 비싼 와인이란 그저 돈 낭비인 걸까? 완벽하게 같은 맛으로 재현된 ‘가짜' 위스키는 ‘진짜'를 대체할 수 있는 걸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짜' 제품들의 진짜 가치는 우리에게 무엇이 좋은 것인지 하나의 기준을 제시해 준다는 점이다. 정말 좋은 것과 정말 나쁜 것을 모두 다양하게 경험했을 때 하나의 큰 좌표가 완성된다. 그냥 가성비가 좋은 제품을 반복해서 마시는 것만으로는 이런 좌표가 잘 그려지지 않는다. 이런 좌표가 그려지고 나면 내가 지금 마시는 이 술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대략 가늠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취향의 지도를 완성해 간다.

이런 ‘진짜' 술을 만드는 사람들은 그 기준을 남들보다 먼저 제시하기 위해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와인을 만들고 위스키를 숙성한다. 때로는 전통에 도전하고 불확실성을 감내하고 수 십 년을 기다린다. 우리가 지름길을 마다하고 굳이 멀리 돌아가는 ‘진짜'에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하는 이유는 이런 노력을 응원하는 마음 때문일지도 모른다. 부디 앞으로 꾸준히 새롭고 놀라울 정도로 좋은 것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길 바라는 마음, 그 응원의 마음은 비록 ‘진짜’를 감별하지 못하는 평범한 소비자라고 해서 덜한 것은 아니다.

맨위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