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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아이폰 한 번 써보실래요?

2020. 07. 27

부모님에게 아이폰을 추천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부모님과 아이폰

아버지는 이제 곧 일흔이 되신다. 처음 스마트폰을 사용하신 건 약 5년 전이다. 소위 ‘효도폰'으로 많이 판매됐던 갤럭시의 저가형 J 시리즈를 지금까지 큰 무리없이 사용해 오셨다. 처음에는 스마트폰이라는 기기를 어색해 하셨지만 지금은 유튜브도 보시고, 영상도 자주 찍으실 만큼 스마트폰에 꽤 익숙해지셨다. 하지만 아무리 기기의 성능을 제한적으로 사용한다 해도, 5년은 너무 긴 시간이었다. 아버지는 최근 자신의 폰이 너무 느려졌고, 화면도 깨끗하지 못하며, 배터리도 빨리 닳는다며 교체를 부탁하셨다. 평상시에는 자식들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는 분이었는데, 이렇게 직접 요청하실 정도면 오죽이나 답답하셨을까. 빨리 바꿔드려야 했다.

어떤 제품을 살 지 길게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갤럭시를 써오셨으니 최근에 나온 갤럭시 모델 중 적당한 것으로 골라드리면 될 터였다. 실제로 ‘효도폰'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는 스마트폰은 대부분 삼성 제품이었다. 관성적으로 갤럭시 라인업만 살펴보다 갑자기 의문이 생겼다. ‘효도폰의 기준이 뭐지?’ ‘어르신들은 꼭 갤럭시만 써야 하나?’ ‘노인들에게 아이폰은 정말 불편한가?’

부모님이 생각하는 효도폰 갤럭시 S7 엣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효도폰의 기준

1. 화면에 나타나는 텍스트가 커야 한다. 노안으로 작은 글씨를 보기 힘드시니까.
2. 어르신들의 주 사용 앱인 전화나 문자, 카톡, 카메라 등의 사용이 편리해야 한다.
아이콘이 직관적이고, 기능을 쉽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3. 바이러스의 위협에서 안전해야 한다. 어르신들은 문자 피싱 위협에 항상 노출되어 있으니까.
4. 카메라 성능이 좋아야 한다. 사진과 영상을 찍는 건 어르신들의 큰 즐거움이다.
5. 디스플레이가 커야 한다.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큰 화면을 선호하신다.
기사를 읽거나 영상을 보기에 큰 화면이 편리하다고 생각하시니까(하지만 이 부분은 약간 호불호가 갈린다).

여기까지 생각해 보니 대부분의 장점은 아이폰에서 충분히 구현 가능한 것이었다. 텍스트의 크기는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 아이콘과 사용의 직관성은 아이폰의 전통적인 강점이다. 또한 ios 특유의 폐쇄성은 어르신들이 당하기 쉬운 문자 피싱 피해를 막아줄 수 있다(안드로이드의 경우 보통 문자로 받은 링크를 클릭하면 원치 않은 앱이 설치되어 개인정보가 해커에게 빠져나가는 식이다. 애플은 앱을 앱스토어에서만 다운로드할 수 있고, 앱 등록 자체가 더 엄격하다보니 이런 식의 피해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카메라 성능은 요즘 나오는 스마트폰들이 다 좋으니 패스. 다만 디스플레이 크기는 얘기가 좀 다르다. 아버지는 여느 어르신들과 달리 커다란 폰을 싫어하셨다. 주머니에 잘 들어가지도 않고, 손으로 쥐기도 불편하다고. 현재 쓰고 있는 정도의 사이즈(5.0인치)면 충분하다고 하셨다. 여기까지만 살펴보면 아이폰이 효도폰이 되지 못할 이유는 없어 보였다.

아이폰 UX 아이폰의 UX는 여전히 직관적이다

아이폰을 고려한 이유는 또 있다. 흔히들 아이폰은 전자기기 사용에 능숙한 젊은 세대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폰은 뭔가 복잡해 보이고, 다루기 힘들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 IT에 익숙하지 않은 평범한 유저들의 경우, 아이폰이 안드로이드보다 사용하기 쉽다. 아이폰의 UX가 좀 더 직관적이고 사용도 편하다는 생각이다.

어르신들처럼 특정한 기능만 집중해 사용하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아버지가 스마트폰으로 쓰는 기능은 전화, 문자, 카카오톡, 네이버 뉴스, 카메라, 유튜브가 전부였다. 이런 제한적인 조건이라면 아이폰 사용이 더 나아보였다. 오래 써도 체감성능이나 업데이트가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물론 아이폰을 쓸 때의 단점도 있었다. 삼성페이는 갤럭시의 킬링 포인트다. 하지만 아버지는 삼성페이를 사용하지 않으셨다. AS 문제도 걱정이라면 걱정이었다. 아이폰은 갤럭시에 비해 AS가 좀 더 번거롭다. 하지만 문제는 스마트폰은 생각보다 고장이 잘 나지 않는다는 것. AS 문제는 그다지 크지 않을 거라고 봤다.

아버지, 아이폰 한번 써보실래요? 아이폰으로 가도 무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자 아버지에게 여쭤봤다. 아버지 다른 스마트폰 한 번 사용해 보실래요? 삼성 말고 애플이라는 회사 건데, 처음에는 조금 힘드실 수도 있는데 금방 적응되실 것 같고, 적응되면 좀 더 편하게 쓰실 것 같고…어쩌구저쩌구…

아이폰SE2 물리버튼의 존재 때문에 아이폰SE2를 선택했다

아버지는 처음에는 약간 망설이셨지만 ‘네가 추천하면 한번 써보겠다’고 하셨다. 후보를 아이폰11과 아이폰SE2로 좁혔지만 선택은 SE2였다. 물리버튼이 아예 없는 모델은 너무 어색해하실 것 같아서였다. 아이폰 SE2는 한 손에 잡을 수 있는 크기, 좋은 카메라 성능, 가장 최신의 CPU를 가진 모델이었다. 4.7인치의 비교적 작은 화면이 조금 걱정되긴 했지만 큰 화면이 필요없다는 아버지의 의견을 따랐다. 부산에 계신 아버지를 직접 만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부모님 곁에 있는 동생에게 폰을 사 달라고 부탁하고, 아이폰을 효도폰으로 바꾸기 위한 당부사항을 꼼꼼하게 적었다.

1. 우선 지금 쓰시는 갤럭시에 Move to ios 앱을 깔고, 모든 데이터를 아이폰으로 옮길 것.
2. 아이클라우드를 끌 것(대신에 구글 포토를 깔아드릴 것).
3. 에어드랍 기능과 시리를 끌 것. 집에 와이파이가 있으니 앱 자동 업데이트는 켜둘 것.
4. 글자 크기는 최대로. 여기에 볼드체도 더할 것.
5. 사파리 페이지의 글씨 크기도 125%로 바꿀 것.
6. 갤럭시의 천지인 키보드에 익숙한 아버지를 위해 키보드 설정을 ‘10키’로 바꿔드릴 것. 이와 함께 자동 수정, 맞춤법 검사, 자동 완성, 자동 대문자 기능을 꺼드릴 것(이 기능들을 끄지 않으면 황당한 실수가 생긴다).
7. 주변 환경에 따라 화면 밝기를 바꿔주는 트루톤 설정을 켜드릴 것. 다만 고장처럼 느끼실 것 같으니 나이트 시프트 기능은 꺼드릴 것.

아이폰 텍스트 크기 조정 화면 텍스트는 가장 크게 조절해드렸다

지문등록까지 마치고, 아버지는 정말 아이폰 오너가 되셨다. 그렇다면 아이폰은 정말 효도폰이 됐을까? 처음 며칠은 꽤 답답하셨던 것 같다. 안부를 묻는 내 전화에 적응이 안 된다며, 괜히 바꿨다고 불평이 많으셨다. 효도폰이 아니라 불효폰을 드리고 만 것인가, 노인에게 괜히 새로운 것에 대한 적응을 강요한 건 아닌가 싶어 후회가 들기도 했다.

노인과 애플 제품 노인들이 애플 제품을 사용하는 모습은 아직 흔치 않다

하지만 일주일쯤 지난 뒤에는 얘기가 좀 달라졌다. 아버지는 아이폰에 적응이 끝났다고, 잘 바꾼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제일 만족하시는 건 부드러운 스크롤이었다. ‘화면이 기름칠 한 것처럼 미끌미끌하게 잘 넘어가서 좋다'는 평이 첫 번째였다. 두 번째는 ‘덜 복잡하다’는 것이었다. 지난 갤럭시의 홈 화면보다 아이폰의 홈 화면이 훨씬 보기 쉽다는 것이었다. 자주 쓰는 앱이 첫 화면에 바로 나오니 찾아 들어가기가 쉬우시단다. 세 번째는 카메라. 사진이나 영상을 찍으면 훨씬 잘 나오는 것 같으시단다(물론 이건 기존에 사용하던 갤럭시가 너무 구형 모델이라 그런 거지만, 만족하시는 모습을 보니 굳이 말을 보태 흥을 깨고 싶진 않았다). 마지막은 사과 마크였다. 새로운 아이폰을 들고 식당에 갔더니 젊은 점원이 ‘아이폰 쓰시는 할아버지 처음 본다'며 엄지척을 하고 갔다고 하셨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으셨다고. 아버지는 일흔 평생 처음으로 힙스터가 된 기분을 느끼셨는지도 몰랐다.

아버지에게 카톡을 보냈다. ‘화면이 너무 작은 것 같으면 얘기하세요. 더 큰 폰으로 바꿔드릴게요.’
아버지에게 답장이 왔다. ‘오열하겠습니다’.
아마 ‘오냐 알겠다' 같은 말을 넣으려고 하셨을 것이다. 나는 바로 동생에게 연락했다. 빨리 자동완성 기능 꺼드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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