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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데믹 시대의 커피

소셜 음료 커피의 개인화에 필요한 것

2020. 05. 11

Writer 신현호 : 여행, 그릇, 음식에 관심이 많은 푸드 칼럼니스트. 부업은 회사원.

핸드드립커피 도구

우리의 몸은 음식을 통해 얻은 열량으로 에너지를 만들어 움직인다. 하지만 종종 우리의 정신을 움직이는 연료는 카페인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나 재고가 유지되는 탕비실의 믹스커피와 점심 식사 후 나른한 오후에 북적이는 스타벅스, 리포트를 쓰고 시험공부를 하는 학생들로 가득 찬 대학가의 카페를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커피는 (술을 마실 수 없는) 이슬람 세계의 와인이었고, (정신 차리고 업무를 이어가야 하는) 사무직 노동자의 막걸리였다.

커피가 처음 유럽에 전파될 때도 사람들은 정신을 깨우는 각성 작용에 주목했다. 술이 주로 축배와 위로, 단합을 위한 끈적한 의식의 재료로 쓰이는 반면 커피는 회의와 소개팅같이 적당한 건조한 만남의 매개체가 된다. 커피를 마시다가 갑자기 어깨동무를 하고 한 잔 더 하자고 의기투합하는 일은 거의 없다. 술에 만취한 채 계약서에 사인하는 일이 거의 없는 것처럼.

이상적인 커피에는 커피의 맛뿐만 아니라 그 커피를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시간과 공간까지 포함되어 있다. 커피를 공급하는 카페는 그래서 단순히 커피를 만들어 파는 곳이 아니라 마치 거실이나 서재 또는 회의실의 확장된 형태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갑자기 찾아온 판데믹은 이렇게 확장된 세계를 다시 축소시키고 있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카페는 역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기엔 조심스럽다. 가장 사회적인 음료였던 커피도 점점 개인적인 음료가 되어갈지 모른다.

대신 이제 커피의 이외의 것보다 커피의 맛 자체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는 기회인지도 모른다. 수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믹스 커피를 수백 번 저어 달고나 커피를 만들어 먹었다. 사실 집이나 사무실에서 직접 커피를 내리는 일은 달고나 커피를 만드는 것보다 훨씬 덜 노동집약적인 일이다. 약간의 준비만으로 충분하다.


커피를 내리는 원리는 거칠게 분류하면 크게 2-3 가지 방법으로 나눌 수 있다. 그중 하나는 압력을 가해 커피를 내리는 것으로 에스프레소 커피가 대표적이다. 압력을 가해 적은 양의 물로 짧은 시간 동안 추출하기 때문에 굉장히 쓰다. 그래서 보통 카페에서 주문하면 설탕과 물이 함께 나온다. 설탕은 쓴맛을 중화시켜 맛의 균형을 잡아주고 그래도 남아 있는 입안의 쓴맛은 물로 헹군다. 에스프레소를 굳이 술에 비유하자면 위스키 같다. 위스키를 온더락스(On the rocks)나 미즈와리(水割り)로 희석해 마시는 것처럼 흔히 물이나 얼음을 넣어 아메리카노로 먹는다.

라떼아트

집에서 에스프레소를 내려 먹기 위해 에스프레소 머신을 들여놓는 건 마치 처음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라이카 카메라부터 사는 것과 같다. 가정용 머신의 가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에스프레소를 가장 사랑하는 이탈리아에서도 집에 에스프레소 기계를 들여놓는 경우는 흔치 않다. 하지만 모카포트는 하나씩 다 가지고 있다. 모카포트는 물을 끓여서 만들어진 증기로 기계식 에스프레소에 근접한 맛을 낸다.

모카포트

다른 방법은 물을 커피에 충분히 머물게 해서 내리는 방법이다. 프렌치 프레스는 커피를 물에 넣고 추출하는 침출식으로 분류되고 핸드 드립 커피는 물을 통과시켜 커피를 만드는 여과식이다. 어차피 에스프레소에 물을 타서 아메리카노로 마실 거라면 프렌치 프레스나 핸드드립 커피 쪽이 더 좋은 선택일 수 있다. 프렌치 프레스는 스타벅스의 CEO 하워드 슐츠도 추천한 방법이다. 필터가 없기 때문에 커피빈의 유분이 걸러지지 않고 그대로 나와 커피빈의 가장 날 것의 맛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인류가 최초로 먹었던 커피의 원형에 제일 가깝다.

프렌치프레스

핸드드립 커피는 종이나 천으로 만든 필터를 사용해 에스프레소에 비해 조금 더 많은 양의 커피 빈을 조금 더 긴 시간에 걸쳐 내린다. 그 시간 동안 커피 안의 다양한 향과 맛이 추출되어 에스프레소를 희석한 아메리카노보다 훨씬 더 다채로운 맛과 향을 가진 커피가 된다. 에스프레소가 위스키에 가깝다면 핸드드립 커피는 차에 더 가깝다. 실제로 추출하는 과정도 다도와 닮아 있다. 차를 마시기 위해서 티팟이 필요한 것처럼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기 위해서는 몇 가지 도구가 필요하다.

핸드드립

물이 내려가는 속도를 조절하는 장치인 드리퍼(dripper)가 가장 중요하다. 물이 머무는 시간에 따라 다른 커피의 맛이 나오기 때문이다. 드리퍼마다 특징이 분명하다. 물이 떨어지는 속도가 가장 느린 드리퍼는 물이 떨어지는 구멍이 하나인 멜리타이고 비교적 빠른 것은 원뿔 형태의 하리오 v60이다. 초보자 입장에서 안정적으로 내리기에는 바닥이 평평한 칼리타 웨이브가 좋다. 여러가지 드리퍼를 갖추어 놓고 새로운 빈을 사올 때마다 다른 방식으로 커피를 내리며 좋아하는 맛을 찾아가는 재미가 있다.

칼리타웨이브

물론 직접 커피를 만드는 것은 바쁜 사람들에게 그다지 효율적인 활동은 아니다. 커피를 갈아서 물을 끓이고 내려서 준비하는 데에만 보통 10분 이상 걸린다. 하지만 커피를 직접 내린다는 것은 그 공간 안에 퍼지는 커피향과 함께 내가 좋아하는 향과 맛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를 즐긴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을 늦추기 위해 모두가 속도를 늦추고 밀도를 낮추고 있다. 커피를 직접 내리는 일은 판데믹의 시간에 적응하는 방법 중에 하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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