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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ad Pro 4가 부릅니다, 존재의 이유

2020. 05. 04

신형 매직 키보드를 만나며 iPad Pro 4가 존재의 이유를 찾았다.

WRITER 이기원 : 세상 모든 물건과 금방 사랑에 빠지는 콘텐츠 제작자.

아이패드

정확히 10년 전, 스티브 잡스는 첫 번째 아이패드를 공개했다. 아이폰 3gs의 대성공 직후라 사용자들은 열광적인 반응을 보냈다. 커다란 화면과 부드러운 터치를 가진 이 태블릿은 출시 1년 만에 1500만 대를 팔았지만 이후 스마트폰들이 대형화되고, 랩탑 역시 성능과 무게를 크게 개선하면서 뭔가 애매한 포지션을 가진 제품이 됐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크게 아쉬울 것 없는.

당신의 다음 컴퓨터는 컴퓨터가 아니다

태블릿 시장의 침체를 우려하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던 2015년, 애플은 12.9인치의 초대형 디스플레이를 가진 아이패드 프로 1세대를 발매한다. 이와 동시에 애플 펜슬, 스마트 키보드도 함께 발매했다. 랩탑에 맞먹는 화면 크기와 입력 장치를 동시에 발매한 건 아이패드 프로를 랩탑의 경쟁자로 포지셔닝 하기 위함이었지만, 랩탑과의 경쟁은 시기 상조였다. 랩탑의 생산성을 따라잡기에는 여전히 부족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지금, 애플은 아이패드 프로 4세대를 출시하면서 이런 카피를 내세운다.

“당신의 다음 컴퓨터는 컴퓨터가 아니다”
이 알듯 말듯 한 문장에 아이패드 프로 4의 핵심이 담겨 있다.

아이패드

- 기본 용량 128GB부터 시작(아이패드 프로 3는 64GB부터 시작)
- 6GB 메모리(아이패드 프로 3에서는 1TB 모델만 적용)
- 8코어 그래픽 프로세서를 갖춘 A12Z 바이오닉 프로세서
- 최대 5미터까지 인식하는 라이다 센서
- 1천만 화소 초광각 카메라
- WiFi 6 지원

위는 전작 대비 아이패드 프로 4가 내세우는 스펙 상 장점들이다. 자세한 내용은 애플 홈페이지에 더 잘 나와있다. 여기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라이다 센서 장착이다. AR을 위한 라이다 센서는 차후 발매될 아이폰 12의 핵심 기능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이고, 그에 따른 앱들도 많이 개발되고 있다. 당장은 아니지만 차후에 유용하게 쓰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라이다 센서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3세대 대비 도드라지는 특징은 찾기 힘들다. 자동차로 치면 연식 변경 모델에 가깝다. 그렇다면 아이패드 프로 4는 왜 이 시점에 등장해야 했는가? 왜 애플은 저렇게 거창한 광고 카피를 내세웠나? 이것은 아이패드 프로의 새로운 파트너인 매직 키보드 때문이다.

새로운 매직 키보드는 출시 전부터 45만 원(12.9인치용)이라는 가격으로 이슈가 됐다. 고작 키보드가 무려 45만 원이다. 12.9인치 아이패드 프로 4(128gb)의 가격이 129만 9천 원이니 둘을 합한 가격은 175만 원에 달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얼마인지가 아니라 그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점이다.

아이패드

나는 얼마 전 12.9인치 아이패드 프로 4를 구매했다.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대형 태블릿이 필요했기에 구매에 큰 고민은 없었다. 하지만 매직 키보드는 구매하지 않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45만 원이라는 가격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며칠 동안 아이패드 프로를 사용하고 나서는 매직 키보드를 추가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 매직 키보드 없이는 아이패드 프로의 성능을 백 퍼센트 활용하기 힘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패드

아이패드 프로 4는 랩탑 시장을 겨냥하고 만든 제품이고 사양도 높다. 생산성을 생각해야 하는 제품이라는 뜻이다(그러지 않을 거라면 이 비싼 제품을 살 이유가 없다). 생산성을 위해서는 입력 장치가 필수다. 나는 이미 블루투스 키보드와 마우스를 여럿 가지고 있기에 아이패드 프로 4를 이들과 연결해 사용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매직 키보드를 추가 구매할 수밖에 없었던 건 효율 때문이다.

맥북 유저들은 알겠지만 애플 트랙패드의 가치는 윈도우용 랩탑의 그것과 다르다. 트랙패드의 편리함과 기능에 익숙해지면 마우스의 존재마저 거슬린다. 새로운 매직 키보드의 핵심도 키보드의 키감이나 힌지의 각도 같은 것이 아니라 트랙패드다. 트랙패드 덕분에 앱 간 전환이 자유롭고, 좀 더 스피디한 작업이 가능해졌다. 자세를 바꾸지 않고 작업을 계속 이어갈 수 있어 집중도도 훨씬 높다. 맥북을 사용할 때와 큰 차이를 느끼기 힘들다.

실제로 나는 매직 키보드 구매 이후 맥북을 사용하는 일이 크게 줄었고, 일상의 많은 작업을 아이패드 프로로 하고 있다. 맥북과 아이패드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미세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맥북의 상판을 들어 올릴 때는 뭐랄까, 약간의 각오 같은 것이 필요하다. 켜는 순간 뭔가 각 잡고 일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아이패드 프로 + 매직 키보드의 조합은 접근이 좀 더 가볍다. 이를테면 일을 ‘시작하기가’ 좀 더 쉽다. 이 미묘한 지점이 아이패드 프로 + 매직 키보드 조합의 존재의 이유를 만든다.

‘큰 차이가 나는 작업이 아니라면 랩탑 대신 아이패드 프로를 쓴다’ 이는 애플이 아이패드 프로를 만들면서 애타게 원했던 바로 그 지점일 것이다. 그리고 매직 키보드의 등장으로 애플의 꿈이 어느 정도 이뤄진 것 같다.

아이패드

아마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아이패드 프로와 매직 키보드의 조합에 의문을 가질 것이다.
‘이 가격이면 차라리 맥북을 사고 말지’라는 생각도 당연하다. 맥북 에어와 매직 키보드를 장착한 아이패드 프로는 사실상 무게 차이도 없는데 말이다.
하지만 아이패드가 맥북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는 것처럼, 맥북 역시 아이패드를 완전히 대체하지 못한다. 맥북은 애플 펜슬을 사용할 수 없고, 화면의 방향을 가로세로로 변환할 수도 없다.

당신이 일반 랩탑의 생산성과 편의성 + 펜슬을 통한 필기 기능 + 언제든 방향을 돌려가며 볼 수 있는 화면이 동시에 필요하다면, 아이패드 프로 4와 매직 키보드의 조합은 충분히 설득력 있는 선택이 될 수 있다. 결국 아이패드 프로 4는 매직 키보드를 만나면서 드디어 존재의 이유를 찾았다는 생각이다. 저 광고 카피처럼 ‘컴퓨터이면서 컴퓨터가 아닌’ 제품이 된 것이다.

ETC

- 맥북 사용자에게 아이패드 프로의 사이드카 기능은 상당히 유용하다. 듀얼 모니터를 쓸 일이 많은 이라면 충분한 가치가 있다.
- 유선 헤드폰 단자가 없다. 아이폰도 아니고 아이패드인데, 노는 공간도 많은데, 유선 헤드폰 단자 하나 정도는 넣어주면 좋았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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