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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유부남인데 게이 게임을 해봤다

게임 타이틀은 ‘게이도라도’다

2019. 05. 27

평범한 이성애자 남성인 내가 앱스토어에서 게이 게임을 다운받았다.

WRITER 이기원 : 세상 모든 물건과 금방 사랑에 빠지는 콘텐츠 제작자.

앱 아이콘

나는 평범한 이성애자다. 아내도 있고, 슬슬 성질을 부리기 시작하는 딸아이도 있다. 그런 내 눈에 얼마 전 들어온 게임 하나, 제목은 <게이도라도>다.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듯, 동성애자를 위한 게임이다. 나도 모르게 다운로드를 눌렀다. 도대체 어떤 게임인지 너무 궁금해서.

?????????? 스타트

앱을 실행시키니 처음부터 천사 날개를 단 핑크 헤어의 머슬 가이가 등장한다. 앞으로의 여정이 꽤 험난해 보였지만, 게임 자체는 생각만큼 과격하지 않다. <게이도라도>는 기본적으로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다양한 스타일의 파트너를 만나 데이트하고, 이들과 함께 미션을 해결하면서 얻은 성과들로 자신의 캐릭터를 꾸미면 된다.

인형놀이 하듯 캐릭터의 코스튬을 바꿔 입히는 건 이 게임의 핵심적인 재미 요소다

인형놀이 하듯 캐릭터의 코스튬을 바꿔 입히는 건 이 게임의 핵심적인 재미 요소다

일반 게임에서 캐릭터의 코스튬은 부수적인 요소에 불과하지만 <게이도라도>에서 캐릭터에게 좋은 옷을 입히는 건 게임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여기서 ‘좋은 옷’이란 굉장히 과감하고 섹슈얼한 옷이다. 게임 캐릭터의 코스튬을 끊임없이 업그레이드하고, 이를 바탕으로 좋은 파트너를 만나는 것이 게임의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엔딩 즈음에는 결혼도 가능하다(는데 거기까지 플레이하진 못했다).

중간중간 나오는 파격적인 일러스트와 꽤 공들여 만든 캐릭터들이 인상적이지만, 아무래도 일반 게임처럼 아무 곳에서나 스마트폰을 꺼내 들기는 부담스럽다. 위 사진처럼 로딩할 때마다 고퀄리티 일러스트들이 시시때때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누가 때마침 보기라도 하면 꽤 난감한 상황이 벌어질 것 같았다. 일과 시간이나 대중교통으로 이동할 때 차마 이 게임을 플레이할 수는 없다. 오로지 혼자 있는 시간에만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이 게임의 단점이다.

스토리 모드에서는 어색한 번역이 몰입을 방해한다

스토리 모드에서는 어색한 번역이 몰입을 방해한다

사실 <게이도라도>는 자세한 리뷰가 큰 의미가 없을 만큼 캐주얼한 게임이다. 그저 손 가는 대로 움직이다 보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전투 모드 등 최근 모바일 게임들이 기본으로 가져야 할 시스템도 적당히 갖추고 있어 크게 지겨움을 느낄 일도 없다. 다만 아쉬운 건 스토리 모드에서의 어색한 번역 수준. 번역이 너무 엉성해서 이야기에 제대로 집중하기 힘들다.

<게이도라도> 사교 모드 화면. 우리 집 주변에 꽤 많은 유저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게이도라도> 사교 모드 화면. 우리 집 주변에 꽤 많은 유저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게이도라도>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사교 모드’다. 이 게임은 GPS 기능을 제공하기 때문에, 이 게임을 즐기는 주변 사람들과의 거리를 보여주는 것은 물론, 채팅도 가능하다.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면서 실제 만남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데이팅 앱의 기능을 겸하는 것이다. 사교 모드에 들어가면 근처에 있는 게임 유저들이 등장하고, 당신은 그 유저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알 수 있다. 성적 취향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유저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이 데이팅 앱 기능은 상당히 강력해 보인다.

내 체형과 비슷한 캐릭터를 획득했다!

내 체형과 비슷한 캐릭터를 획득했다!

흥미로운 요소가 많은 게임이긴 하지만, 성인이 즐기기에는 전반적으로 좀 유치한 면이 있다. 의도적으로 진입장벽을 낮게 설정한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하지만 전체적인 밸런스는 꽤 정교하게 구현돼있고, 과금을 유도하는 방식도 상식적인 수준이다. 제작사가 상당히 공들여 만든 게임이라는 걸 금세 눈치챌 수 있다. 그건 제작사가 이 시장의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 2013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자료에 따르면 미국 내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LGB)의 비율은 약 2.3%였다. 한편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8 게임 이용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만 약 3천만 명이 게임을 즐기고 있고, 그중 2700만 명 정도가 모바일 게임을 즐기고 있다.

미국의 성소수자 비율을 한국에 그대로 적용해보면 전체 인구의 약 62만 명 정도가 성소수자용 게임을 다운로드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세계로 눈을 넓히면? 가능 이용자 수는 급격하게 높아진다. LGBT 게임은 확실한 수요를 노릴 수 있는 타깃 시장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캐릭터의 코스튬은 이 게임에서 핵심적인 요소다

캐릭터의 코스튬은 이 게임에서 핵심적인 요소다

하지만 플레이할수록 게임에 대한 흥미가 떨어졌다. 처음 이 게임을 봤을 때 가졌던 모종의 기대감이 사라진 것이다. 남자들만 등장한다는 걸 제외하면 일반적인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게이는 이 게임을 다르게 느낄까? 나의 게이 친구를 만나 잠깐 플레이 시켜봤다.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킬링 타임용으로는 괜찮은 것 같은데? 다만 파트너로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너무 머슬 가이 위주인 게 별로야. 여리여리한 캐릭터가 부족해서 다양성이 떨어지잖아. 모든 게이가 저런 스타일을 좋아하는 건 아니라고. 개발자의 게이 감수성이 의심스럽다. 뭣보다 게이들이 너무 희화화된 것 같아서 조금 기분 나빠. ”

세상의 모든 사랑을 응원한다

세상의 모든 사랑을 응원한다

처음 이 게임을 할 때는 묘한 거부감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일종의 방어기제처럼, 이 게임을 너무 즐기면 안될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감정은 사라졌다. 처음엔 얼굴이 다 화끈거리던 일러스트들도 어느 순간부터는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게 됐다. ‘게이 게임’이라는 선입견은 사라지고, 게임을 게임으로만 보게 됐다.

결국 이 게임의 가장 큰 성과는 ‘이성애자들도 가볍게 접근해볼 수 있는 성소수자 게임’이라는 점 아닐까 싶다. 나는 어떤 개인도 성적 지향성 때문에 차별받거나 고통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장르에서 이런 시도들이 계속 등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게이도라도>는 누구 눈치 보며 구매할 일도 없고, 하드코어 게임도 아니다. 게이 문화에 한 번쯤 호기심을 가졌던 사람이라면, 가벼운 마음으로 플레이해봐도 좋지 않을까 싶다.

* 이 게임은 연령 등급이 있다. 17세 이상만 플레이 가능하다.
** 한국어, 독일어, 스페인어, 영어, 이탈리아어, 일본어, 중국어, 포르투갈어, 프랑스어 등 다국적 언어를 지원한다.
*** 사실 이런 성소수자용 게임은 꽤 역사가 깊다. 일본에서는 이른바 BL(Boys Love) 게임이라 불리는, 소프트한 남성물이 90년대부터 나오고 있었다. 좀 더 하드코어한 게임으로는 <드림 대디>, <염다류>, <알몸집사> 등이 있다. 관심이 생긴다면 찾아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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