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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패션 생활

2019. 04. 15

슬기로운 패션 생활

Writer 박세진 : 패션과 옷에 대해 쓰는 칼럼니스트. <패션 vs 패션>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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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 패션 소비의 주축으로 밀레니엄 세대, Z세대가 떠오르고 있다. 베이비 부머 세대와 중산층 세대가 점유하고 있었고 그들의 취향과 필요에 의해 구성되어 있었던 하이 패션은 이에 따라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예컨대 프린트 티셔츠, 나일론 패딩, 후드, 스니커즈 같은 일상의 옷이 파리와 밀라노의 캣워크 위에 오르고 명품 매장 쇼윈도에도 걸리게 된 건 그런 이유다.

이들은 이런 옷을 입고 자랐고 이런 옷을 입고 살았다. 이전 세대들이 성공의 징표로 고급 브랜드 매장에서 슈트와 드레스, 명품 가방과 지갑을 구입했던 것처럼 이 새로운 세대들은 나이키의 레어 스니커즈나 발렌시아가의 나일론 패딩, 베트멍의 레인 재킷 같은 걸 구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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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예컨대 힙합과 스트리트 패션 문화, 레트로와 80, 90년대 패션 트렌드, 자기 신체 긍정주의, 다양성 존중, 타인의 시선보 다 자신의 취향과 필요를 중심에 두는 경향, 편안한 옷을 선호하는 경향 등등이다. 물론 로고와 유명인의 패션, SNS, 한정판에 대한 몰두 등은 여전하다. 하지만 동시에 패션에서 안티 퍼 운동이나 인종 다양성, 성적 다양성 같은 정치적 이슈도 중요하게 다뤄진다. 그중 하나가 환경 문제다.

사실 패션 트렌드와 환경친화적 옷은 오랫동안 대립적인 성격으로 인식되어 왔다. 화려한 염색, 각종 부자재, 동물류의 고급 소재는 유기농 면이나 재활용 소재, 낭비를 막기 위한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과 너무나 멀리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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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위에서 말한 경향들은 패셔너블함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와 기준을 바꿔놓고 있다. 단지 패션을 통해 멋지고 예쁘게 보이는 것만 추구하는 건 옛날의 일이다. 몇 년 전 고프코어 패션이 한참 유행일 때 사람들은 구제 시장에서 80, 90년대에 나온 꼼 데 가르송의 티셔츠, 파타고니아의 후리스 재킷, 멋대로 탈색된 리바이스 청바지 같은 걸 구해 입고 나타났다. 이전 주인의 삶과 우연이 결합되어 있는 얼룩덜룩하고 너저분한 낡음은 절대 브랜드에서 인위적으로 탈색시켜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물론 이런 안티 패션적 태도는 곧바로 또 하나의 패션 트렌드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유행이나 로고에 지나치게 종속되지 않고 반드시 필요한 걸 필요한 만큼 입는 즐거운 패션 생활을 꾸려나가고 싶고, 동시에 환경 문제처럼 자신이 관심을 가지는 문제에 도움을 줄 만한 패션 라이프를 만들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큰 영감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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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자신의 옷은 자신의 행동과 생활 패턴에 맞는 옷을 고르는 것 역시 패션이다. 또 로고나 라벨 말고도 삶을 쾌적하게 만들어 줄 도구의 하나로 관리하고, 그렇게 입으면서 낡아가는 과정을 관찰하는 것 역시 패션이다. 이렇게 패션 라이프를 유지해 나가는 게 바로 지속 가능한 패션이다. 매장에서 옷 라벨을 뒤적거리며 재활용 소재를 사용했는지 확인하는 것보다 가지고 있는 옷을 오랫동안 입는 게 훨씬 친환경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제 조건들이 있다. 애초에 오래갈 만한 좋은 옷을 구입해서 잘 관리하며 입어야 한다. 적절한 가격 지불은 스웨트샵 문제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소비를 줄이는 방어막이자 옷을 잘 관리할 유인이 된다.

또 낡은 옷을 그저 후줄근함으로 받아들이는 생각도 변해야 한다. 너무하다 싶은 정도면 폐기해야겠지만 어딘가 찢어져 살짝 기운 자국 지워지지 않는 작은 얼룩, 낡아서 닳은 티셔츠의 솔기 같은 흔적들은 다들 다른 형태고 자신의 삶이 만들어 낸 유니크한 흔적이다. 이는 또한 새 옷만 입겠다고 패스트패션 매장에서 시즌마다 새 제품을 사는 것보다 가치 있는 패션 생활을 영위했다는 증거다. 지금 필요한 건 바로 이런 생각의 전환이 아닐까.

사진 출처 : Courtesy of Harrods, Ware-house & 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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