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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의 추천 알고리즘

내 마음을 맞춰봐

2019. 03. 13

넷플릭스의 추천,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NETFLIX

Writer 정준화 : 디지털 기획자. 틈나는 대로 영화, TV, 책, 전시 등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쓴다.

어떤 여행객들은 사방이 열려 있는 벌판에서 오히려 길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너무 많은 경우의 수에 주눅이 들어 급성 선택 장애를 앓게 되는 것이다. 넷플릭스의 다양한 콘텐츠는 분명 이 글로벌 OTT(Over The Top, 인터넷을 통해 보는 TV) 서비스의 주요한 강점이지만, 그 다양함이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서 세계 최대 규모의 스트리밍 비디오 플랫폼은 시청 기록을 분석하고 패턴을 읽어내 각각의 가입자들에게 딱 맞는 콘텐츠를 추천해주기로 했다.

참고하는 정보는 대략 다음과 같다. 사용자가 어떤 콘텐츠를 선택했는가, 같은 콘텐츠를 선택한 또 다른 사용자들은 어떤 선호도를 보였는가, 선택한 콘텐츠를 끝까지 재생했는가 아닌가, 시청 시 어떤 디바이스를 사용했는가 등등. 이론대로라면 당신은 넷플릭스에 접속하는 순간 곤도 마리에(일본 출신의 정리 전문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의 호스트이기도 하다)의 서랍 속처럼 마음을 설레게 하는 작품들로만 채워진 메인 페이지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준화 님의 취향 저격 베스트 콘텐츠’ 메뉴를 훑을 때마다 나는 고도화된 알고리즘에 대한 기대치를 조금씩 낮추게 된다. 수년 전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을 봤을 때, 이 영화의 제작진이야말로 남자 주인공보다 더한 사디스트라고 생각했다. 맨 정신으로 보기 힘들 만큼 유치한 대사와 국민체조 보다 지루한 베드 신의 공세를 견디며 두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 기다렸다. 그래서 넷플릭스가 나를 뭘로 보고 이 작품을 자랑스럽게 내밀었을 때는 약간 발끈할 뻔했다. 체감상 알고리즘의 독심술 적중률은 20% 미만인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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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거나 말거나 이 글로벌 비디오 플랫폼은 큐레이션 서비스에 계속해서 박차를 가할 분위기다. 약 1년 전부터는 콘텐츠의 섬네일 디자인까지 맞춤형으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평소 액션 장르를 즐겨보는 사용자가 접속한다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대표 이미지 영역에는 주인공들의 전투신이 게시될 것이다. 로맨스 팬이라면? 스타로드와 가모라의 투 샷이 그 자리를 대신 채울 수도 있다.

그러나 넷플릭스의 맞춤형 섬네일 기술은 작년 말 뜻밖의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서비스의 알고리즘이 흑인 사용자들에게 작품 내용이나 극중 비중과 상관없이 흑인 배우들 위주로만 편집된 이미지를 노출했다는 것이다. 인종차별 혐의가 제기됐고, 넷플릭스는 “인종, 성별, 출신 등의 정보는 수집하지도, 이용하지도 않는다”라는 해명을 발표했다.

이 지점에서 떠오르는 질문. 개인 신상에 관한 데이터를 참고하지 않고도 인종을 추측해냈다면 과연 대단한 기술력이라고 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대단한 기술력으로 시스템이 내린 결론이 ‘사용자들은 자신과 동일한 인종이 출연하는 작품을 선호한다’였다면? 취향이라는 복잡하고 미묘한 문제에 대한 단순하고 융통성 없는 해석은 아닐까? 그나저나 문득 내 계정에서 본 영국 왕실 배경의 역사극 <크라운>의 섬네일이 생각난다. 엘리자베스 2세는 온데간데없었고 웰시코기 두 마리만 눈밭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플랫폼의 첨단 알고리즘이 내게서 뭔가 개 같은 면을 감지했기 때문은 아닐 거라고 믿고 싶다.

기술의 고도화는 불확실성을 줄여가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사람의 취향은 그 분야에 대한 애정이 깊어질수록 예기치 못하게 넓어지고 단정하기 어렵게 변덕스러워지기도 한다. 넷플릭스의 추천과 나의 선택이 자꾸 어긋나는 이유를 어쩌면 이러한 딜레마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아직까지도 나는 알고리즘에 대한 불신을 가득 품고 틈나는 대로 넷플릭스의 아카이브를 뒤지다가 마음에 드는 콘텐츠를 우연히 ‘발견하는’ 쪽을 선호하는 편이다. 아래에 덧붙인 추천작 세 편도 그렇게 찾아낸 것들이다. 이런 콘텐츠들을 놔두고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따위나 들이밀다니.

<카 마스터 : 튜닝의 신>

고담 카센터는 클래식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개조에 능하다. 실용성보다 소장 가치에 중점을 두는 이들의 작업은 요란하고 과시적이며 창의적이다. <미션 임파서블>의 카센터 버전 같은 리얼리티 쇼.

<그는 야구장에 갔다>

한 남자가 살인 혐의로 기소된다. 무죄를 증명하려면 범행이 벌어지던 시각 그가 LA 다저스 구장에서 야구 경기를 관람하고 있었음을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담당 변호사는 생각지도 못했던 우연에서 실마리를 찾는다. ‘영화보다 더 영화적인’이라는 상투적인 수식이 딱 들어맞는 다큐멘터리다.

<미술 탐정단>

스케일 큰 쯤 되는 BBC의 리얼리티 쇼. 국제 미술품 거래인들이 첨단 과학과 미술사적 지식을 총동원해 의뢰받은 작품들의 진품 여부를 밝힌다. 지적인 긴장감이 넘치는 아트 수사극.

이미지 제공 : NETFL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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