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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alian Luxury

상류 문화의 품격

2018. 10. 15
남훈 일러스트

WRITER 남훈(Alan Nam) : 패션 컨설턴트이자 남성 편집숍 ALAN’S의 오너, 직업상 전세계 패션 도시들의 구석구석을 꿰뚫고 있다.

럭셔리라고 하면 일단 에르메스, 샤넬, 바쉐론 콘스탄틴, 반클리프 아펠, 키톤과 브리오니 등 최고급 브랜드를 먼저 떠올리는 게 우리나라의 사정이다. 오랜 장인 정신과 부자 계층의 지지로 형성되어온 굳건한 브랜드 이미지,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없다는 강렬한 열망, 몸에 걸치면 나의 존재감도 함께 상승하는 듯한 마법 같은 에너지. 당연히 그 브랜드들은 존중받아야 할 문화이고 세상에 기여한 가치가 높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선 럭셔리가 남에게 보여주는 과시 방식으로 소비되는 측면이 있다. 특정 브랜드에 대한 쏠림이나 유행이 특별히 강한 우리 현실에서 럭셔리의 의미는 브랜드와 계급의 함수 관계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이탈리아와 뉴욕에서 업무상 만난 사람들은 럭셔리의 의미를 사뭇 다르게 인식하고 있다. 오랜 인연을 맺은 그들과 가벼운 대화를 나누다 럭셔리란 무엇인가 질문을 하게 됐는데, 그들은 개인적인 휴식, 인테리어와 가구, 집 안의 그림, 여행, 친구들과 즐거운 식사, 자기 나이와 같은 연산의 빈티지 위스키 등 다소 의외의 대답을 내놓았다. 그러니까 그들에게 럭셔리는 남에게 보여줄 만한 어떤 브랜드나 사치품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특별한 가치가 있는 시간, 공간, 물건 그리고 관계 같은 것이다. 1년에 휴일이나 기념일을 빠짐없이 챙겨 누리면서도 8월 한 달 내내 휴가를 즐기는 게 당연한 이탈리아 사람들의 럭셔리는 우리와 어떻게 다를까. 자 이번 칼럼에선 마음 편하게 이탈리아식 럭셔리를 함께 경험해보시라.

친구들과 주말에 보트 타기

보트

로마를 거쳐 찾아간 안코나(Ancona)는 이탈리아 중부 지방 마르케(Marche)주의 작은 도시로, 바닷가에 위치해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다. 마르케 지역은 우리나라로 치면 동해를 면한 강원도 같은 인상인데, 해변이나 동굴 등 자연환경도 아름답지만 이탈리아의 품질 높은 구두 산토니(Santoni)나 듀칼스(Doucals) 브랜드들의 고향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관광지로 잘 알려진 나폴리나 시칠리아와 달리 전체적으로 작고 소박한 분위기이며 인종이 다른 외부 사람들에게 스스럼없이 먼저 인사할 만큼 주민들이 순수하다. 권위 있는 미쉐린 가이드와는 평생 인연이 없을 테지만, 어느 식당을 들어가도 수준 높은 해산물 요리들과 편한 가격의 와인이 즐비해서 설레는 마음으로 떠난 휴양지에서 바가지만 잔뜩 쓰는 사람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을 준다. 물론 소박한 도시라 해도 이탈리아 부자들이 별장이나 제2의 집을 사두는 곳이라 괜찮은 호텔도 많고, 다양한 보트들이 정박한 풍경이 눈에 띈다.

태닝

이탈리아 사람들이 꿈꾸는 럭셔리 중 하나는 주말에 친구들과 보트를 타고 푸른 바다로 나가서 천천히 태닝을 하는 것이라고. 물론 모든 사람이 보트를 소유하지는 못해서 아름다운 해변에 마냥 누워 태닝을 즐기는 시간도 스몰 럭셔리의 일부라 하겠지만. 라르디니 브랜드의 오너 안드레아 라르디니(Andrea Lardini)의 보트를 타고 안코나 바다를 달려 나갔다.

바다 수영

이 바다를 끝까지 달리면 크로아티아가 나온다고. 그렇게 30분을 달리다 망망대해에서 배를 툭 세운 후, 보트에 비치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모두 바다로 뛰어들었다. 수영장이 아닌, 바다 한복판에서 느긋하게 수영을 하는 기분이라니. 누군가는 수영을 계속하고, 또 누군가는 보트 위에 누워 태닝을 즐긴다. 그리고 다들 모여 차갑게 한 샴페인을 마신다. 보트 가진 친구가 있으면 주변 사람들이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으니 누가 돈자랑 한다고 눈 흘길 일도 없다. 주변을 돌아보면 시간이 정지한 느낌. 이탤리언 럭셔리의 첫 경험은 보트와 함께 시작했다.

시간을 이겨낸 브랜드 라르디니의 40주년 파티

라르디니의 40주년 파티

1978년, 마르케 지역에 공장을 설립하고 각 브랜드에서 주문받은 옷을 만들기 시작해 발전을 거듭하며 루이비통, 구찌, 돌체앤가바나, 버버리, 에트로, 발렌시아가 등 글로벌 브랜드의 옷을 제작하고, 나아가 이 시대 메이드 인 이탈리아(Made In Italy) 재킷의 선도적인 아키텍트가 된 라르디니. 창립 40주년을 기념하는 파티가 마체라타의 스페리스테리오(Sferisterio) 야외 극장에서 열렸다. 3000석 규모에 매년 여름 열리는 오페라 페스티벌로 유명한 이곳에서 라르디니가 창립 파티를 여는 걸 보고는 그 규모도 놀랍지만, 어떤 열기 같은 걸 느낄 수 있었다. 파티는 지나온 시절을 회상하는 라르디니 4형제의 소회에 이어 브랜드와 기업의 영속성을 결정할 2세대들이 인사를 하고, 오랜 친구와 파트너들이 우정 어린 축하를 하는 자리이기도 했지만, 이 시대를 대표하는 이탈리아 클래식 브랜드로 우뚝 서고 싶다는 그들의 거대한 꿈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라르디니의 40주년 파티

키톤, 아톨리니, 브리오니와 같은 최고급 브랜드들이 클래식 복장의 시대를 이끌었고, 그다음엔 제냐, 꼬르넬리아니, 까날리, 이사이야, 벨베스트, 카루소 같은 이탈리아 각 도시의 실력 있는 브랜드들이 춘추전국 시대처럼 약진했다. 하지만 지금 이탈리아 남성복은 축소되는 시장 앞에서 다들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역사 깊은 이탈리아 브랜드들이 아랍이나 중국에 팔려 나가고, 젊은 소비자가 슈트보다 SPA 제품들을 선호하는 현실 앞에서 라르디니는 품질을 넘어서는 현실적인 가격과 스타일로 이탤리언 럭셔리를 재정의하고 싶은 것이다. 이날 오너인 안드레아는 “나는 이탈리아 재킷의 새로운 아키텍트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럭셔리는 영원불멸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맞게 새로운 해석이 가능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더불어 라르디니 회사와 공장에서 일하는 1500명의 직원들이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고 함께 파티에 참석한 건, 한 시대를 이끄는 자신감 있는 브랜드가 뿜어내는 나름의 럭셔리였다.

밀라노에서 오랜 친구와 편안한 저녁

그토록 인상적인 파티를 끝낸 안코나에서 기차를 타고 다시 밀라노로 이동했다. 우리나라 KTX만큼 빠르진 않지만, 3시간 반쯤 걸려서 도착한 밀라노는 나에게 또 다른 의미에서 이탤리언 럭셔리를 경험할 수 있는 도시였다. 화려한 인테리어와 명성 높은 식당들이 밀라노에도 없진 않지만, 결국 내가 느끼기에 럭셔리는 주인을 잘 아는 식당에서 친한 친구와 함께하는 편안한 자리에서 나온다. 아무리 고급이라고 해도 한정된 재료를 이용하는 식당에서 모두에게 최상의 부위를 공평하게 배분할 수 없기에 자기 자신을 위한 럭셔리라는 의미에서 보자면, 아는 식당이 최선일 수 있는 것이다.

솔페리노

밀라노에서 특별히 애정을 느끼는 식당 솔페리노(Solferino)는 이탈리아 남부 풀리아 지방의 음식을 전문적으로 다룬다. 풀리아 지방은 나폴리에 비해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개성 있는 맞춤복 브랜드 샤맛(Sciamat)과 화려한 패턴이 일품인 브랜드 딸리아또레(Tagliatore)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남부의 아름다운 동네. 산악이 거의 없는 지역이면서 아직 관광객의 손길을 타지 않아서 나 홀로 보고 즐기는 맛이 새롭다.

솔페리노 음식

특히 솔페리노에선 작은 귀 모양을 한 풀리아 전통 파스타 오레키에테(Orecchiette)를 맛볼 수 있는데, 요게 참 별미다. 질 좋은 올리브오일 파스타에 브로콜리와 함께 무청이 들어가서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매운맛이 기분 좋게 입안에 감돈다. 파스타나 해산물 못지않게 솔페리노는 피렌체식 스테이크라고 할 수 있는 피오렌티나도 잘하는데, 주인이 직접 고기의 굽기를 살피고 손님들에게 나눠주면서 매칭할 와인도 함께 권한다. 10~11월에는 트러플을 슥슥 갈아 얹어주는 이탈리아식 스테이크와 바롤로 와인, 혹은 아마로네 와인을 음미해보시라. (와인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한국에 수입되는 와인에 세금이 70%나 붙는다니 시대에 맞지 않는 것 아닌가.) 이날은 솔페리노에서 샤맛의 니콜라와 함께 환상적인 가격의 두툼한 와인 리스트를 뒤져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동시에 손님들을 배려하는 직원들이 있고, 그리고 식물들이 곳곳에 자리해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공간, 솔페리노. 마지막에 식후주인 그라파 한 잔도 이탈리아에서 저녁을 하는 작은 기쁨.

Solferino
+ 위치 : Via Castelfidardo, 2, 20121 Milano
+ 문의 : 39 02 2900 5748

밀라노의 바

이탈리아가 와인으로 유명해 과거에는 이탈리아로 여행이나 출장을 가도 위스키나 바 문화에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프랑스 와인을 활발하게 소비하면서 자국의 문화적 상승을 이끌어낸 곳이 영국이듯, 영국 위스키들을 개성적으로 소화해서 깊고도 진한 바 문화를 만든 건 이탈리아다. 파크 하얏트 호텔이나 아르마니, 불가리,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등의 바는 물론 인테리어가 훌륭하고 위스키 셀렉션도 다양하지만, 너무 잘 차린 파인 다이닝 느낌을 준다. 매일매일 가기에는 뭔가 문턱이 높아 보인달까. 하지만 이탈리아에서 술 좀 한다는 친구들을 취조해보면 밀라노에도 구석구석에, 그것도 주택가 같은 곳에 괜찮고 편안한 바들이 꽤 있다.

멀리건스(Mulligans Irish Pub)

겉으로 보기에는 기네스나 에일 맥주를 부담 없이 마실 만한 아이리시 펍으로 보일 따름인 멀리건스(Mulligans Irish Pub)는 그중에 숨겨진 보석 같은 바다. 실제로 영국과 벨기에 맥주들은 거의 다 갖추고 있으며, 메뉴판에 없는 맥주들도 있으니 직원이나 사장님에게 직접 물어보면 재미있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멀리건스 위스키

특히 멀리건스의 놀라운 점은 사장님의 위스키 사랑인데, 일단 바에서 내놓는 위스키의 다양성은 말할 것도 없고 가격은 더욱 겸손하다. 바에 앉아서 여러 종류의 위스키를 시음했더니 이내 위스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열정적으로 설파하더니 자신이 좋아하는, 한국에서 보기 힘든 몇 가지를 스윽 내민다. 그러면서 팔지는 않지만 지하에 있는 개인 컬렉션까지 보여주는데, 이게 참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희귀한 데다 엄청난 빈티지들이다. 가격도 몇천 유로를 호가하지만, 도무지 구할 수 없는 1970년 빈티지의 라프로익과 로즈뱅크 시리즈들을 보고 있자니, 이탈리아 문화는 패션과 와인뿐만 아니라 꽤나 다양한 영역에서 숙성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모두에게 나름의 럭셔리는 다양하고 개성적인 의미가 있다는 생각도 들고.

Mulligans
+ 위치 : Via Giuseppe Govone, 28, 20155, Milano
+ 문의 : 39 02 345 1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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